(증심사 산책) 8. 저승 생명은 구제하고, 이승 생명은 법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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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68회 작성일 21-05-2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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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향해 막 터뜨린 첫 울음은 지구의 일원이 되었음을 알리는 우렁찬 외침이다. 가장 환희로운 순간이다.

하지만 탄생의 순간이 곧바로 시한부 인생의 시작임을 부인할 자 그 어디에도 없다. 생명을 가진 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진리이다.

잔인한가? 아니다. 삶의 이면이 죽음인 것을 어쩌란 말인가? 삶과 죽음은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다.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 그래서 삶이 더 극적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는 게 더 가치 있고 치열하고 눈부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값진 삶을 살고 싶은가? 그럼 절에 가자. 가서 지장전에 들어가 보자. 죽음이 똬리를 틀고 웅크린 그곳에 엎드려 옹색한 삶의 이력들을 거침없이 드러내자.

사는 일이 덜 두렵고, 덜 아플 것이다. 삶과 마주하는 일이 조금 수월해질 것이다. 절에 지장전이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죽은 자를 위무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자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내민 손 잡아 주기 위해 지장보살님이 거기 앉아 계신 것이다.


지장전과 회심당의 기이한 동거

증심사 지장전은 두 개의 현판을 달고 있다. 본래 전각 이름 ‘지장전’과 왼 켠 출입문에 걸린 ‘회심당’이 그것이다. ‘지장전’ 이면서 ‘회심당’ 이기도 하는 기이한 두 집 살림의 역사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으로 지장전이 불타버리자 새 전각을 짓기 위한 돈이 넉넉하지 않자 취백루 오른쪽에 있던 회심당을 헐어 지장전을 다시 짓게 된 것이다.

절에서 옛 스님의 진영(초상화)을 모신 사당은 흔히 볼 수 있으나 수행자가 아닌 일반 신도를 위한 사당은 쉬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증심사에는 그런 사당인 회심당이 있었고, 불타 버린 지장전을 지을 마땅한 방법이 없던 차에 회심당을 헐게 된 것이다. 아마 회심당이 전각이었다면 그리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전각마다 제 쓰임이 있으니 하나를 없애거나 둘을 합치는 인위적인 변화는 쉽지 않을 터이다. 대신 회심당은 이미 죽은 이들을 모신 사당이었으니 설령 지장전과 합친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채용신 화가 손끝에서 살아난 회심당 주인장

회심당의 주인은 정만재와 그의 부인 하동정씨이다. 정만재는 조선시대 왕실의 친척들을 위해 설치한 관청 돈영부의 관리였다. 돈영부는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없는 왕실의 종친과 외척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기관으로 실질적인 업무는 없었던 한직에 속하는 부서였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 지장전 한 켠에 걸린 ‘회심당기’를 통해 짐작할 뿐이다. 다만 그가 절 안에 따로이 사당을 지어 기릴 만큼 증심사를 위해 큰 몫을 했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도가 절에 할 수 있는 일은 불사금을 많이 내 절의 면모를 일신하는데 보탬을 준 일일 것이다.

지장전 정면을 마주하고 서면 왼쪽에 양옆으로 열게 되어있는 문짝 두 벌이 나온다. 그 안에 회심당 주인 부부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데 예사로운 그림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상화를 그린 이가 바로 고종, 흥선대원군, 최익현, 황현 등 조선 말 내노라하는 이들의 초상화를 그린 당대 최고의 화가 채용신(1850-1941)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군인으로 관직에 나간 이로 화원 출신은 아니었으나 22살에 흥선대원군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인물이다. 전통적인 양식의 인물화를 그리면서도 원근법이나 명암 같은 서양기법을 접목시켜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관직에서 물러나 전주에 머물던 때인 1927년에 이 초상화 두 점을 그렸으니 78세의 노익장을 발휘한 작품인 셈인데도 힘찬 서기가 느껴진다.


모든 중생 성불하는 그날까지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그는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큰 발원을 세우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의 중생을 성불로 이끄는 보살이다. 특히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 중생을 제도하는 역할을 자처하였다. 이승에서 저지른 죄업을 심판하는 심판관인 시왕을 함께 모셔 ‘시왕전’이라고도 하고 죽음 이후를 다루는 곳이라 ‘명부전’이라고도 한다.

증심사 지장전에는 육도 윤회를 깨뜨릴 수 있는 고리가 6개 달린 지팡이(육환장)를 들고 앉은 지장보살 옆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서 있다.

그리고 양 옆으로 죽은 자의 죄가 가벼운지 무거운지 그 정도를 심판하는 10명의 시왕이 의자에 위엄을 갖추고 앉아 있다. 우리가 지옥의 왕으로 알고 있는 염라대왕도 10명의 시왕 중 한 분이다. 시왕 앞에 그들의 재판을 보조하는 판관과 녹사가 각 3명, 2명 그리고 시왕을 모시는 동자 7명이 조각되어 있다.

증심사 지장전은 회심당과 공간을 나눠 쓰고 있긴 하나 이 전각 본래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삶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려는 죽은 이들의 정거장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다. 또한 ‘그래도 사는 동안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살아있는 자들을 향해 말없는 설법을 하고 있다.


궁금해요

지장보살의 전생 이야기가 있나요?

먼 옛날 이웃하고 있는 두 나라 임금이 서로 정법의 벗이 되어 깊은 우정을 나눴다. 그러나 백성들이 나쁜 행동을 쉬 고치지 못하자 열 가지 선행으로 모범을 보여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임금은 큰 서원을 세웠다. 한 임금은 빨리 불도를 이루어 어리석은 백성들을 남김없이 제도 하겠다 하였다. 또 한 임금은 고통에 빠진 이들을 먼저 제도하되 그들 중에서 누구라도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다면 결코 자신이 먼저 성불하지 않겠다 하였다. 뒷 날 앞서 왕은 출가하여 ‘절지성취여래’가 되었고 뒤 왕은 지장보살이 되었다. [지장보살본원경]에 나오는 지장보살의 전생 이야기다.

 

☞ 『불교길라잡이』 곽철환 저, 『절에서 배우는 불교』 혜자스님 저. 참고 했습니다.

글 _ 서관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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