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심사 산책) 9. “경치 좋은 곳에 오니 마음이 저절로 슬퍼진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78회 작성일 21-05-28 10:10

본문

허공엔 경계가 없다. 경계가 없다함은 막힘이 없다는 말이다. 막힘이 없다는 것은 무엇이든 제 뜻대로 넘나들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안팎이 따로 없으니 흘러가고 흘러옴이 자유롭다. 

그러나 그 허공에 문이 들어서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미 안과 밖은 정반대의 작용을 하게 된다. 그 문이 사찰의 문이었을 땐 더더욱 그러하다. 

절 밖이 고통스런 현실의 세계라면 그 안은 부처님의 나라 불국정토이다. 밖의 세상이 생멸이 있는 찰나의 세계라면 안의 세상은 한결같은 진여의 세계이다. 

문 밖에 서있는 고통 받는 중생이 그 문의 문턱을 딛고 걸어 들어오면 문 안에서는 살아있는 부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깨달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절에선 문 하나에도 예사롭지 않은 의미가 담겨있다. 숨은 그림처럼 꼭꼭 숨겨둔 비밀이 있다. 


일주문이 들려준 법문

일주문一柱門, 풀이하면 한 개의 기둥 문이란 뜻이다. 기둥 네 개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것이 보통의 건물이다. 

하지만 일주문은 일직선으로 기둥 두 개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린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왜 절로 향한 첫 관문의 이름을 일주문이라 했을까? 그것은 한마음으로 들어서라는 사자후이다. 어리석고 탐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깨달음을 얻겠다는 한마음으로 들어오라는 무언의 설법인 것이다. 절 들머리에 서서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법문했을 ‘일주문 부처님’ 말씀을 몇이나 간절히 들었을까? 

증심사 일주문은 다른 건물들과 같이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다. 그러던 것을 1980년대 초에 다시 세웠다. 화려한 단청과 우람한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진 일주문은 ‘무등산 증심사’라는 현판을 달고 이정표 노릇까지 하고 있다. 사람들은 주로 계단을 딛고 올라가는 일주문보다 옆 경사로를 따라 절로 향한다. 

그래서 일주문이 그 자리에 들어선 까닭을 거듭하여 되풀이할 겨를 없이 스쳐가는 것 같아 아쉽다.


둥둥둥 법고소리 들리는가?

일반적으로 대웅전을 들어서기까지 절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앞서 말한 일주문과 천왕문 그리고 불이문(또는 해탈문)이 그것이다. 

천왕문에는 사천왕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은 본래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왕천에 살면서 도리천의 우두머리인 제석천왕을 섬기는 존재이다. 

또 절의 사방을 지키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국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 다문천왕이 그들이다. 

증심사의 경우 천왕문 역할을 했던 전각이 바로 취백루이다. 이 취백루는 정유재란(1597년) 때 경내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에 탈 때 함께 소실되었다. 

그 뒤 1609년에 중창을 하여 다시 세웠는데 안타깝게도 1951년 한국전쟁 때 또다시 불타고 말았다. 지금의 건물은 1998년에 복원한 것이다. 

한국 전쟁 전의 기록에 따르면 1층에 사천왕이 모셔져 있어, 불이문이 따로 없는 증심사에서 대웅전 경내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취백루 1층이 천왕문 구실을 했다면 2층은 예불 때 필요한 사물(목어 운판 범종 법고)이 자리한 곳이었다. 

한국전쟁 이전에 마루가 깔린 2층 한쪽에 법고가 걸려 있었다고 하는데 그 넓은 공간에 북만 덩그마니 있었을 것 같진 않다. 절이 쇠락하면서 여법하게 행해지던 예불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나머지 의식구들도 없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일주문과 취백루 사이, 현재 돌담식당 자리에 사천왕문을 세우고 사천왕상을 모실 예정으로 불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증심사 집단시설지구 이전사업이 진행되는 대로 곧 사천왕문이 들어설 예정이다.

  • 페이스북으로 공유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SNS 공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 위로